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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 생각 없는 행동이 역사교육 망친다.
    2013년 2013. 9. 3. 17:51

    ‘국뽕’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있다.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과도한 자긍심을 드러내는 사람을 조롱하는 뜻의 속어이다. 국뽕이라는 표현이 적합하진 않지만, 우리 민족의 민족적 주체성은 높은 편이다. 세계에 몇 안 되는 단일민족국가이기도 하고 수많은 침략과 전쟁, 그리고 긴 일제 치하의 식민지 시절을 겪으며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됐다. 이러한 역사의식 자체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역사의식이 생각 없이 행동으로 변할 때, 그 행동은 늘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지난 27일 교육부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몇 달간의 논란을 정리하는 발표였다. 하지만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 이외에 한국사 교육의 교육 방법 개선이나 한국사 수능 필수화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일종의 미봉책이고 국민들의 열망을 등에 업은 졸속 처리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졸속 처리를 오롯이 정부 책임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역사문제라는 민감한 주제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과 행동이 정부를 부추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독도 지킴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성신여자대학교 서경덕 교수와 대한민국 홍보동아리인 생존경쟁은 지난 6월 5일부터 ‘한국사 지킴이 100만 대군’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이 서명 운동은 8월 31일 총 서명인원 116,762명으로 종료됐다. 애초의 목표인 100만에는 못 미쳤지만 목표의 십 분의 일 수준인 11만여 명의 서명만으로도 본래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한국사 지킴이 100만 대군’ 서명운동 홈페이지의 내용을 보면 최근 학생들의 역사인식 부족의 직접적 원인을 한국사 선택과목화에서 찾고 있다. 그렇기에 해결책도 한국사의 수능 필수 과목 지정이다. 하지만 다시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돌린다고 해서 역사 인식 부족의 문제가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보다 근본적 원인은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다시 그 원인은 수능이라는 평가에 의존한 교육 시스템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한국사 수능 필수화 발표는 단 한 차례의 공청회만을 거친 뒤 이루어졌다. 국민의 성화에 못 이겨 급하게 처리한, 혹은 국민의 지지를 이용해 처리한 모양새이다. ‘한국사 지킴이 100만 대군’ 서명운동도 국민의 역사의식만 자극할뿐 이렇다 할 대안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국민이 좋아할 만한 구호만 있고 그 내용은 공허하다.
     
    투철한 역사의식과 주체적 민족성을 가지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의식이라는 절대적 틀에 갇혀 생각 없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교육이란 내면화의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내면화의 과정은 합리적 의심과 사고, 토론을 통해 이루어진다. 올바르게 배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생각이 요구된다. 역사의식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숙고 없는 역사의식의 강조와 정책, 운동은 국민의 기분 맞추기용 쇼일뿐이다. 겉보기에 좋아 보이고 옳아 보이는, 이른바 인기 있는 일만 좇아서는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가 ‘국뽕’ 논란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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