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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보도와 관련해) 언론의 의혹제기와 공직자 사생활 보도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2013년 2013. 9. 29. 18:04

      1950년대 초반 미국상원의원인 존 매카시가 손에 들고 흔들던 서류 뭉치에 전 미국은 공포에 휩싸였다. “미국 내 공산당원의 명부가 내 손에 있다.” 냉정의 시대에 공산당원이라는 낙인이 두려웠던 미국인들은 매카시의 말에 동조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사람 에드워드 머로를 제외하고 말이다. 머로는 매카시의 폭로에 논리적으로 반박했고 결국 매카시의 폭로의 근거 없음이 만천하에 밝혀졌다. 냉전 시대의 미국인들과 언론을 지배한 것은 낙인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그 공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채동욱 검찰총장을 향한 의혹보도에 대한 동조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자식 의혹보도는 모든 매체를 뒤덮었다. 물론 공직자에 대한 의혹 제기는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채 총장에 대한 보도가 정당한 의혹 제기였는지는 검토해야 할 점들이 많다. 의혹 제기에 구체적 증거가 있었는지 여부와 공인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일보>의 보도는 구체적 증거 없는 정황 증거만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물론 정황증거만으로도 얼마든지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정황증거만으로 단정적 어조의 기사를 보도한 것은 문제다. 실질적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채 총장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다고 밝혀졌다.”라는 사실 보도의 형태를 띤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조선일보> 보도의 문제점은 공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부분보다도 정황 증거만으로 단정적 보도를 했다는 점에 있다.

      공직자의 사생활은 공직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보호받아야 한다. 이번 사안 역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공직자는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의 사람이므로 그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면 개인의 사생활보다는 공직자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다. 도덕성이라는 가치 기준이 상대적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그 기준은 정할 수도 없고 정해서도 안 된다. 결국, 국민의 상식이 그 기준선이 될 것이다.

      공직자의 사생활에 대한 언론의 의혹 제기는 언론 본연의 역할 중 하나이다. 가장 좋은 것은 구체적 근거를 토대로 보도하는 것이다. 정황증거만으로 보도할 때에는 단정적 어조를 지양해야 한다. 공직자의 사생활은 공직수행과 관련 없는 경우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분위기상 도덕성과 관련된 부분도 언론의 공정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검증과정에서의 기준과 형평성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TV는 지식과 깨달음을 주고 영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TV가 최소한의 용도로 쓰일 때의 일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TV는 바보상자에 불과하다.” 머로의 말이다. TV는 그리고 언론은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참고용으로 제시해야 한다. 섣불리 사태를 예측해 단정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공포에 휩싸여 혹은 욕망에 휩싸여 국민들에게 참고용 시각이 아닌 ‘미리 정해놓은’ 답을 던져준다면 TV는 그리고 언론은 그야말로 바보상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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