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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막다른 길에 다다른 ‘아서’, ‘조커’는 누가 만들었나

inowhere inowhere 2019. 10. 4. 16:15


(출처=네이버 영화 스틸컷)

개인적으로 살인, 폭행 등의 단순한 사건 기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범행 방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잘못은 개인의 것인 양.

물론 극단적 선택은 개인의 잘못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늘 생략돼 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고 클릭을 안 하고 돈이 안 되니까.

영화 ‘조커’는 아서 플렉이라는 개인이 절대 악의 화신이 돼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렸을 때 학대를 당하고 동료들에게 무시당하고 근근이 유지되던 상담 서비스도 끊기고 약도 더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서는 ‘조커’로 내몰린다. 그에게 선택권은 없다.


(출처=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를 관통하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쭉 뻗은 일직선의 도로 또는 기찻길, 그리고 아서는 그 길 위에서 도망치려(혹은 생존하려) 하지만, 결국 막다른 길로 내몰린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 내몰려 아서가 ‘조커’가 된 이후로 길은 여러 갈래가 된다. 조커가 주도권을 쥐고 선택한다.

아서는 머레이쇼에 출연하게 되자, 쇼의 호스트인 머레이 프랭클린에게 자신을 ‘조커’라고 소개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쇼에 출연해 모든 카메라와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단 하나뿐이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쇼를, 그 처절한 코미디를 선보인다.


(출처=네이버 영화 스틸컷)

글의 처음에 단순 사건 기사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범죄자를 두둔한다거나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끔 방치한 사회와 시스템이 아무런 지탄을 받지 않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서는 자신의 아버지라고 믿은 브루스 웨인에게 “그냥 한 번만 안아주면 안돼요?”라고 묻는다. 그가 원한 건 그저 사랑과 관심이었는데 세상은 그를 조롱하기 바빴다.

과연 ‘조커’는 누가 만드는가.
티끌만 한 관심과 사랑이면 충분한 그에게 그토록 잔인하고 가혹한 세상을 준 건 다름 아닌 우리 모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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