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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의 여유와 효도의 기준
    쓰다 2021. 5. 11. 16:41

    지난 주말, 엄마가 계신 시골에 갔다 왔다. 차가 막히지 않으면 왕복 6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어버이날이 있는 주말이어서인지 왕복 9시간 이상이 걸렸다.

    평소에 집에 잘 내려가지 않는다. 성격이 못돼먹어서 그렇기도 하고 운전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게 작년과 올해 내가 달라진 점인 것 같다. 마음의 여유. 그렇다면 그 마음의 여유는 어디서 왔을까? 당연히 물질적 여유로움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2017년부터 약 4년간 코인에 투자해왔다. 2017년 하반기에 약간의 수익을 보고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공부하면서 그저 장밋빛 미래만을 꿈꿨다. 그러다가 2018년 초, 이른바 ‘박상기의 난’을 정통으로 맞으며 대부분의 자산이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한 과정을 버티고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과정에 (반포기 상태긴 했지만) 새로운 프로젝트와 코인에 투자했고 기존에 들고 있던 코인에도 추가 투자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다.

    힘겹게 이뤄낸 자산의 가치기에 보람 있고 즐거웠다. 그리고 당장 수중에 돈은 없어도 내가 가진 코인의 현재 가치가 꽤 되니까,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그러한 여유의 힘을 빌려 집에 갔다 왔다. TV가 하나 필요하다고 하시기에 나름 좋은 거로 하나 사드리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 돈 많다고.” 자랑질도 좀 했다.

    칭찬받기를 원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 돈 많으니까 엄마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당연한 거지만)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걱정이 먼저 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니까.

    “너 그거 빨리 팔아서 집을 사라, 빚을 갚아라.” 등등.

    현금을 들고 있는 게 손해로 느껴지는 사람에게 어서 코인을 처분하라고 하니까 그런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괜히 얘기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내가 너무 들떴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효도와 엄마가 생각하는 효도는 그 기준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망각했다. 정작 엄마가 맨날 이야기하는 건 얼른 장가가라는 거니….

    코인 자산 규모 상승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봤다.

    물질적 여유가 가져다주는 마음의 여유가 진짜 여유인 건지, 아니면 물질적 풍족함을 마음의 여유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고 어떤 게 좋은 효도인지 등등.

    생각을 정리하면서 내가 큰 착각에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마음의 여유라고 착각했던 건 물질적 여유일 뿐이었다. 마음이 여유로웠다면 ‘나 코인으로 돈 많이 벌었어.’라고 자랑질하기 전에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야 했다. 엄마는 내가 비트코인에 투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뉴스에서 비트코인 소식이 나오면 귀 기울여 듣게 됐다고 했다. 걱정스러워서. 그리고 나는 잊고 있었지만, 엄마는 절대 잊을 수 없을 소식도 떠올랐다. 지난해 엄마의 친구 아들이 빚을 내 주식을 하다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수익률만 좇는 일에 모든 마음이 팔렸었다. 엄마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그저 ‘자랑’과 ‘과시’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걸 ‘효도’라고 우길 셈이었다.

    창피하지만, 적는다.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 ‘박제’한다. 내년 어버이의 날에는 부디 조금은 나은 아들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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