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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뚝심송, 이원재, 그리고 ‘소득의 미래’
    즐기다/책 2020. 3. 3. 17:41

     

    오랜만에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에 대해 내가 가진 오래된 관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원재라는 저자에 대한 호감이었다.

     

    1. 이유 하나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은 건, 아마도 그것은 알기 싫다는 팟캐스트에서였을 거다.

    당시 패널이었던 고 물뚝심송(박성호)님이 기본소득에 대해 설명하는 에피소드(지금 찾아보니 201311월에 올라온 에피다.)를 듣고 ? 이거 괜찮은데?’라고 생각했었다.

    무려 6년하고도 4개월 전. 이때까지만 해도 기본소득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점이기에 놀아도 그냥 돈을 준다!’는 개념에 거부감이 크지 않았고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받아야 한다는 따뜻하지만 실행력 없는 사고의 틀에 갇혀 있을 때였으니까.

    어쨌든, 이때부터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괜찮은’, ‘이뤄지면 좋을’, ‘가치로운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참 재미없는 제목임에도 선뜻 이 책을 고르게 된 첫 번째 이유다.

     

    2. 이유 둘

     

    이원재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기자 공부한다고 신문 스터디를 하던 때였을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그리고 더 명확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딴지에서 진행했던 글쓰기 강의.

    현장에 내가 직접 갔는지, 동영상으로 시청했는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이원재 대표(현 시대전환 대표)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의 장면은 잘 기억난다.

    모든 게 글감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적는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열정이 있었고 꽤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기억은 그가 언론에 기고하는 글을 다른 이들의 글보다 꼼꼼히 살펴보는 계기가 됐고 LAB2050이라는 정책연구소를 설립했다는 소식 그리고 소득의 미래라는 책을 썼다는 것까지 빠르게 알게 됐다.

    누군가의 이 될 정도로 타인에게 관심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가장 눈길 가는 글쓴이 중 한 명인 건 분명하다.

     

    3. 그래서 이 책이 뭐가 좋은데?

     

    알기 쉽고 잘 읽힌다. 책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오탈자가 조금 보이고 글이 덜 다듬어졌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는 이 책의 초중반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뜻이고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히 잘 쓴 책이다.

    더 중요한 건, 단순히 기본소득이 뭐고 뭐가 좋고 등의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확히 얼마를,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지급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기본소득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 상황을 입체적으로 설명하는 대목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미국의 중하층 노동자들은 절박한 상황이 됐다. 그들은 실제로 '지식은 높고 임금도 낮은' 중국 글로벌 중산층 노동자들과 경쟁하게 됐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지고 있다. 그들에게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뾰족해졌고 울퉁불퉁해졌다.” - 소득의 미래 63p 중에서

    저자는 이어 우리나라 경제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설명한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고 가장의 소득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상위 10%가 아니라면 보통 사람의 삶을 누릴 수 없는 세상이 됐다고 강조한다.

    “경제가 압축 성장한 만큼, 불평등도 압축적으로 커졌다.” - 소득의 미래 80p 중에서

    월급이라는 환상, 일을 열심히 하고 그 능력만큼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오래 되지 않은 미신에서 벗어나 이제는 새 지향점을 향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AI, 블록체인 등의 발달이 우리 삶에 미치게 될, 우리 소득에 미치게 될 혹은 이미 미치고 있는 현실적인 밑그림을 바탕으로 설득력을 갖는다.

    “'영원한 고용'은 결국 월급의 진실을 보여준다. 월급, 즉 임금은 사실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낸 부를 나눠 갖는 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 또는 '성과에 따른 공정한 월급'이라는 개념은 완전한 환상인지도 모른다.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월급의 성격은 점점 더 성과에 대한 보상에서 공유 부의 분배로 변해갈 것이다.” - 소득의 미래 194p 중에서

     

    4. 새로운 분배 시스템으로의 시대전환

     

    결국 저자의 주장은 기존에 자유경제라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던 분배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거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기본적으로 일은 줄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퇴색하는 상황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세워졌던 국가의 분배 기능을 훨씬 폭넓게 개편해야 한다는 거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노동은 왜 노동이 아닌가. 배달기사의 노동은 왜 보호받지 못하는가. 자영업자의 출산은 왜 국가가 보호하는 출산이 아니어야 하는가. N잡러의 사회보험은 왜 본인이 고민해야 하며, 우버 기사와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에서 나오는 이익은 왜 모두 우버가 가져가는가. 이미 두 가지의 굵직한 제안이 나와 있다. 하나는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소득 제도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가 보장하는 완전고용 제도이다.” - 소득의 미래 226p 중에서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구체적인 기본소득의 액수로 현재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받는 금액보다 높은 60만원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예산 마련 방안도 같이 제안한다.

    법과 제도는 늘 현실을 뒤따라가기 마련이다. 분배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효율적인 분배와 정의로운 분배를 동시에 이루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서도 기본소득은 단연 매력적인 카드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번 총선에서 시대전환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1인당 월 60만원.
    일을 하든, 안 하든. 직장이 있든, 없든.
    당장 실현될 순 없는 일이지만, 상상하는 건 즐겁다.

    6년 전 물뚝심송이 말했던 것처럼 3~4명이 모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고 취업과 창업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 실패해도 정말괜찮으니까.

    그동안 솔직히 우리나라 국민들 너무너무 힘들게 살아왔으니까. 
    이제 이 정도의 사치 아닌 사치는 좀 누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은 느슨해도, 조금은 느려도, 조금은 여유로워도 괜찮은 나라.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행복할 수 있는 나라.
    무엇보다 더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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